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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이슈

공포·추리 등 장르 작가들이 본 현재와 미래 -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
입력 : 2011-01-30 19:01:10
수정 : 2011-01-30 19:01:10


ㆍ장르문학 독자층 두터워져
ㆍ‘한국의 롤링’ 나올 날 머잖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내 공포·추리·환상문학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리스타로 일하며 추리소설을 쓰는 정명섭씨, 성형외과 의사이며 공포소설을 쓰는 장은호씨(앞줄 왼쪽부터), 공포문학 작가 이종호씨, 환상문학 작가 김이환·박애진씨, 추리소설을 쓰는 박지혁·한이씨(뒷줄 왼쪽부터). 황금가지 제공



“한국 장르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지난 27일 저녁 서울 양재동의 한 식당, 한국 장르문학 작가들의 건배사가 울려퍼졌다. 한국 공포문학 작가들의 모임인 ‘매드클럽’, 추리소설 작가 모임인 ‘한미모(한국 미스터리 작가모임)’,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 3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출판사 황금가지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전업작가부터 의사, 형사, 바리스타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한국 장르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논했다.

국내 장르문학 출판의 역사는 길지 않다. PC통신에서 시작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르문학 작가들의 작품들이 2006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으로 출간됐고, 2007년에는 이영도, 듀나, 복거일 등의 SF 소설을 묶은 <얼터너티브 드림>이, 그 다음해에는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출간됐다. 현재까지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은 5권까지,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은 3권까지 출간됐다.

‘매드클럽’ 창립 멤버로 한국 공포문학 1세대이자 영화 <분신사바>의 원작을 쓴 이종호 작가는 “외국 공포소설이 인기를 끄는 반면 국내 작품은 없으니까 직접 써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며 “처음 원고를 투고할 때만 해도 출판사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지난 5년간 독자층이 꾸준히 두꺼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공포·추리·환상 문학 작가들이 장르간 경계를 넘어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드클럽’의 창립멤버 중 한 명인 장은호씨의 직업은 성형외과 의사다. 장씨는 “본과 1학년 때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공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며 “의료와 관련한 공포소설을 주로 쓰며 국내에 공포영화가 부족한데 좋은 원작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한미모’ 소속으로 추리소설을 쓰던 김유철씨는 지난해 장편소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김씨는 “김중혁·윤이형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중간문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장르문학 단행본 출간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외국에 비하면 열악한 상황이다. 추리소설 을 쓴 최혁곤씨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밝힌 세계 10대 고소득 작가들 명단에 조앤 롤링, 제임스 패터슨, 스티븐 킹 등 장르문학 작가들이 대부분 올라와 있는데 반해 국내 장르문학 작가들은 인지도가 낮고 작품을 발표할 지면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분명하고, 장르문학을 ‘수준 낮은’ 문학으로 치부하는 시선들이 있기 때문에 장르문학에서 성공한 작가들이 본격문학 쪽으로 이탈하는 것도 장르문학이 정체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독자층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등 ‘원 소스 멀티 유스’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장르문학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다. 출판사 황금가지는 그동안 중단했던 ‘황금드래곤 문학상’을 올해 다시 되살릴 예정이며,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장르문학 전문지 ‘네오픽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은 “현재 단편 위주의 창작 풍토를 바꿔 장편 창작이 늘어야 한다”며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면서 장르문학의 성장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